독방과 아지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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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갤러리강호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5-09-06 23:58본문
전시작가 : 김푸른, 박아름/고진
전시기간 : 2025. 9.18.~9.22.
전시장소 : 갤러리 강호
다원예술 전시 <독방과 아지랑이> 소개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괴리를 느낀 역사는 유구하다.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동시에 개인적으로 선호하고 즐기고자 하는 일이 있다. 의무와 책임, 즐거운 욕망을 하나로 통합한 경우도 있지만, 그때조차 그 안에서의 의무와 책임, 즐거운 욕망이 끝없는 세포 분열처럼 또다시 나눠지고 만다.
오랜 친구이자 각 분야의 예술가로 살고있는 두 작가(고진, 김푸른)는 문제의 두 시간 “독방과 아지랑이”를 공통의 주제로 가지고 와보았다. “독방”은 의무적으로 살아내는/쫓기는/나만이 홀로 버티고 해내야 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반대로 “아지랑이”는 자유로운/느긋한/희망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시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라는 접속 조사를 사이에 두고 있기에 이는 결국 두 시간의 관계를 말하게 된다. 독립된 존재가 아닌 두 존재 사이의 관계란 이분법의 부정을 낳는다. ‘독방’은 ‘부정적’, ‘아지랑이’는 ‘긍정적’이라는 단순 도식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두 작가의 ‘독방’과 ‘아지랑이’의 시간을 엿보며 ‘독방’과 ‘아지랑이’가 상호 간에 어떤 모습으로 의지/의존하고 있는지를 더듬어보는 것도 작은 흥밋거리가 될지 모른다.
작가 소개
문학/연극분야: 고진(박아름) 작가
그렇다. 유치하게도 당신의 상상 그대로 “고진감래” 중 “고진”만을 따와 지은 필명이다. 의미도 유치하면 좋으련만, 달달한 게 올 걸 기대하지 말고 하고 있는 작업에나 집중하자는 다소 침울한 뜻을 품었다. 이제는 이름을 지을 때와는 조금 달라진 의미를 남몰래 품고 있다. 혹시 이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작업들을 다 하면 내 고통도 다하려나, 그런 얄팍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달까. 지금까지는 공연 무대를 전제로 하는 희곡 전용으로 사용해왔다. 서른여섯 먹도록 이렇게 저렇게 써왔던 에세이네, 소설이네, 기타 글들에도 이름이 여럿 되고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이름을 사용할 때는 진지하게 사용하지만 돌아서거나 돌이켜보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삶 전반에 깔린 태도라 볼 수도 있겠다. 작업 하나하나에는 목숨을 거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겠냐는 그런 가치관이다. 가끔 상상한다. 가혹하고도 텅 빈 사막에 홀로 떨어졌을 때의 나는 누구일까. 내가 해왔던 그 어떤 것도 나를 증명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그런 비소. 항상 열심히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저편에 있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표작 :
희곡 <카인을 위하여> (미발표, 2026년 내부 쇼케이스 예정)
희곡 <빈 세계로부터> (쇼케이스 발표)
희곡 <홈스윗홈: 집으로 뛰어!> (공연 – 화성 반석아트홀)
희곡 <도어투도어> (공연 – 서울 여행자극장)
희곡 <베토벤: 어둠에서 영원까지 – 가족> (공연 – 서울 뿐또블루)
시각예술 분야: 김푸른 작가
이미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장면들은 기억 속에서 계속 선명해지거나 흐려지며 새로운 장면을 생성한다. 작업자 김푸른은 일상에서 수많은 사물이나 장면을 항상 만나고 지나치지만 제대로 마주한 것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을 즐긴다. 계속 규칙 없이 파편화되고 조합되는 불명확성 속에서 어떤 지점을 붙잡는다. 이렇듯 비물성에서 시작된 포착을 다양한 매체와 손을 통해 나열과 배치를 거쳐 실체가 있는 물성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참여전시 :
<파티파티: 정글짐> 삼육빌딩
<한지: 시대와 생활, 사물과 재료> 온양민속박물관 A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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